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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이 2016년 선보인 작품으로,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이라는 공간으로 옮겨 재해석한 영화다. 처음에는 한 아가씨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사기극처럼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이 뒤집힌다. 특히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의 시선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며 누가 속이고 있고, 누가 진짜 자유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본정보
제목: 아가씨 (The Handmaiden)
개봉: 2016년 6월 1일
감독: 박찬욱
원작: 세라 워터스 《핑거스미스》
장르: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144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아가씨》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이후 제71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에서 비영어영화상을 받았다. 원작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1930년대 조선으로 옮긴 것이 특징이다.
줄거리
일제강점기 조선.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숙희(김태리)는 사기꾼 후지와라 백작(하정우)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일본인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에게 접근해 자신의 사랑에 빠지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백작은 히데코와 결혼한 뒤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재산을 차지할 계획을 세운다.
숙희는 히데코의 하녀가 되어 거대한 저택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 히데코는 숙희가 예상했던 모습과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의 통제 아래 살아온 히데코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연약해 보인다.
숙희는 계획대로 히데코와 백작의 결혼을 도와야 하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히데코에게 진짜 감정을 품기 시작한다.
그러나 히데코가 백작과 결혼한 뒤 상황은 완전히 뒤집힌다.
정신병원에 갇히는 사람은 히데코가 아니라 숙희였다.
등장인물
숙희(김태리)
처음에는 돈을 위해 히데코를 속이려는 하녀. 하지만 히데코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계획보다 자신의 감정을 선택하게 된다.
히데코(김민희)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일본인 상속녀. 수동적이고 순진한 여성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시점을 바꾸면서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후지와라 백작(하정우)
실제 귀족이 아니라 신분을 꾸민 사기꾼. 히데코의 재산을 노리며 숙희를 이용하지만 자신 역시 다른 인물들의 계획 속으로 들어간다.
코우즈키(조진웅) 히데코의 이모부. 일본 문화에 집착하며 희귀한 책들을 수집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히데코를 오랫동안 억압해온 인물이다.
관전포인트
《아가씨》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치는 시점의 변화다.
1부에서는 대부분 숙희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그래서 관객 역시 히데코를 순진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부에서 같은 시간이 히데코의 관점으로 다시 펼쳐지면서 우리가 처음 봤던 행동과 대사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두 번째는 저택의 구조다. 코우즈키의 저택은 서양식과 일본식 건축이 기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는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조선인 코우즈키의 욕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느 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책 역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책은 지식과 자유를 상징하지만 히데코에게 책은 오랫동안 억압과 공포의 도구였다. 그래서 후반부 숙희가 서재를 파괴하는 장면은 단순히 물건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히데코를 억압했던 세계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결말 해석
※ 여기부터는 영화의 핵심 반전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데코는 처음부터 백작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코우즈키의 저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작과 손을 잡았고, 숙희를 자신의 대신 정신병원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계획에 없었던 일이 발생한다. 숙희와 히데코가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것이다.
숙희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고, 두 사람은 결국 백작까지 속여 함께 도망친다. 히데코는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재산을 챙긴 뒤 숙희와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난다.
반면 백작은 코우즈키에게 붙잡힌다. 코우즈키는 히데코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를 고문하지만, 백작은 담배 속 수은을 이용해 자신과 코우즈키를 함께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남성들이 서로를 속이고 소유하려던 게임에서는 모두가 파멸하고, 처음에는 그 게임의 말처럼 보였던 숙희와 히데코만이 판 자체에서 빠져나간다.
제목 ‘아가씨’의 의미
영화 초반 숙희는 히데코를 계속 ‘아가씨’라고 부른다. 이 호칭에는 명확한 신분 차이가 존재한다. 한 사람은 주인이고 다른 사람은 하녀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관계는 무너진다.
숙희는 히데코를 구하고 히데코 역시 숙희를 구한다.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제목은 역설적이다. 영화는 ‘아가씨’라는 신분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신분과 역할에서 벗어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총평
《아가씨》의 가장 큰 재미는 반전 자체보다 반전을 알고 난 뒤 앞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점에 있다.
숙희는 히데코를 속이러 들어왔고, 히데코 역시 숙희를 속이고 있었다. 백작도 두 사람을 이용하고 있었으며 코우즈키는 그 모든 인물 위에서 히데코의 삶을 지배한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에 누가 더 영리한 사기꾼이었는지를 가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숙희와 히데코가 얻는 것은 돈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다. 특히 히데코에게 탈출은 단순히 저택이라는 장소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역할을 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아가씨》는 치밀한 사기극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자신을 가두고 있던 세계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가?”가 궁금하지만, 마지막에는 오히려 “누가 누구를 구했는가?” 라는 질문이 남는다.
그리고 영화가 내놓는 답은 비교적 분명하다.
숙희와 히데코는 서로를 구했고, 결국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