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이 2003년 선보인 범죄 스릴러로, 1980년대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송강호와 김상경이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를 연기하며, 단순히 범인을 찾는 이야기를 넘어 당시의 시대상과 부실한 수사 환경, 그리고 끝내 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집착과 좌절을 담아낸다. 실제 사건의 진범은 영화가 나온 뒤 오랜 시간이 흐른 2019년에 특정됐지만, 영화는 사건이 미제로 남아 있던 시기에 제작되었다. 

기본정보
제목: 살인의 추억
개봉: 2003년 4월 25일
감독: 봉준호
장르: 범죄, 미스터리, 드라마
러닝타임: 132분
출연: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송재호, 박해일 등
영화는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와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작품을 1980년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당시 한국사회의 풍경까지 담아낸 작품으로 소개한다. 

줄거리

1986년 경기도 화성. 한 여성의 시신이 농수로에서 발견되고 지역 형사 박두만(송강호)이 수사를 맡는다. 그는 과학적인 증거보다는 경험과 직감을 믿는 형사다. 용의자의 얼굴을 보면 범인인지 알 수 있다고 자신하고,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자백을 받아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비슷한 방식의 살인이 계속 발생하면서 사건은 연쇄살인으로 번진다.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 서태윤(김상경)은 박두만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그는 서류와 현장 기록을 분석하며 범행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수사가 계속되면서 형사들은 비 오는 밤, 빨간 옷을 입은 여성,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특정 신청곡 등의 연결고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박현규(박해일)라는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를 범인이라고 확정할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범인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지만 형사들이 확신을 가질수록 진실은 오히려 손에서 멀어진다.

등장인물

박두만(송강호)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지역 형사다. 영화 초반에는 용의자를 폭행하고 증거까지 만들어내지만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방식에 점차 의문을 품게 된다.
서태윤(김상경)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로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논리와 증거를 중시한다. 처음에는 박두만보다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건이 계속될수록 냉정함을 잃어간다.
조용구(김뢰하)

폭력적인 수사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형사다. 그의 모습은 당시 수사기관의 강압적인 수사방식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박현규(박해일)

형사들이 마지막까지 의심하는 유력한 용의자다. 영화는 그가 실제 범인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으며, 바로 그 불확실성이 후반부의 긴장을 만든다.

 

관전포인트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박두만과 서태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초반의 박두만은 자신의 눈과 직감을 맹신한다. 반대로 서태윤은 자료와 과학적인 증거를 믿는다. 그런데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박두만은 점차 자신의 직감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오히려 서태윤은 감정에 휩싸여 박현규를 죽이려 한다.
두 사람의 위치가 뒤바뀌는 순간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수사 실패가 아니다.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무너질 때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도 중요하다. 범인을 추적해야 하는 순간에도 경찰력이 시위 진압에 동원되고, 현장은 제대로 보존되지 않으며, DNA 분석을 위해 증거를 해외에 보내야 한다. 영화는 연쇄살인사건과 1980년대 한국사회의 혼란을 자연스럽게 겹쳐놓는다.

결말 해석

※ 여기부터는 영화의 주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는 박현규의 DNA가 범행 현장의 증거와 일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범인이라고 확신했던 서태윤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박현규에게 총을 겨눈다.
그때 박두만이 그를 막는다.
초반에 “눈을 보면 범인인지 안다”고 자신했던 박두만은 박현규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박현규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시간이 흐른 뒤 박두만은 형사를 그만두고 평범한 가장이 되어 있다. 우연히 과거 살인사건 현장을 다시 찾은 그는 한 여자아이에게 얼마 전에도 어떤 남자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말을 듣는다.
박두만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묻자 아이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얼굴”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박두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 장면은 《살인의 추억》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봉준호 감독은 실제 범인이 영화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마지막에 송강호가 카메라를 바라보는 설정에도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마지막 시선은 관객을 향하면서 동시에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범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제목 ‘살인의 추억’의 의미
흥미로운 것은 제목이 ‘살인의 기록’이나 ‘살인사건’이 아니라 ‘추억’ 이라는 점이다.
영화 후반의 박두만에게 사건은 이미 오래전 일이 되었다. 그는 직업도 바뀌었고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사건 현장을 다시 찾는 순간 과거의 기억은 그대로 되살아난다.
범인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은 살인자의 기억만을 의미한다기보다 그 사건을 경험한 형사들과 피해자의 가족, 그리고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남겨진 기억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총평

《살인의 추억》이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범인을 잡는 과정만으로 긴장을 만드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형사들의 엉성한 수사가 때때로 웃음을 만들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웃음은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범인을 찾지 못했다는 허탈함만 남는다. 코미디와 스릴러, 시대극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변해가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연출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영화가 남기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괴물 같은 살인범의 얼굴이 아니다.
“평범하게 생겼어요.”
바로 이 말이다. 범인이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의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영화의 공포를 완성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카메라를 바라보는 박두만의 눈은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정말 얼굴만 보고 누가 범인인지 알아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