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디거(Digger)》는 《버드맨》과 《레버넌트》를 연출한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과 톰 크루즈가 만난 블랙코미디·드라마다. 거대한 환경재앙을 일으킨 석유 재벌이 오히려 자신을 인류의 구원자로 포장하려 한다는 설정을 통해 기후위기와 자본, 정치 그리고 우리가 비극을 소비하는 방식까지 풍자한다.
기본정보
제목: 디거 (Digger)
감독: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장르: 블랙코미디, 드라마, 풍자
러닝타임: 128분
출연: 톰 크루즈, 리즈 아메드, 존 굿맨, 산드라 휠러, 마이클 스털버그, 제시 플레먼스
북미에서는 10월 2일 개봉하며 해외에서는 9월 30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특히 《레버넌트》와 《버드맨》에서 이냐리투와 호흡을 맞춘 촬영감독 에마누엘 루베즈키가 참여했고, 영화 전체를 VistaVision으로 촬영했다.
줄거리
주인공 디거 록웰(톰 크루즈)은 막대한 부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석유 재벌이다. 환경 문제보다는 자신의 사업과 늙고 병든 고양이에게 관심을 두고 살아가던 어느 날, 그린란드의 시추 현장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빙하에 생긴 작은 균열이 급격히 커지고 결국 거대한 빙하가 떨어져 나와 유럽을 향하기 시작한다. 그대로 충돌한다면 대규모 쓰나미와 엄청난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과학자 가네시(리즈 아메드)는 인간이 해류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고 경고하지만 디거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과 각료들까지 디거의 저택에 모이지만, 이들이 먼저 고민하는 것은 사람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보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이며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다.
등장인물
디거 록웰(톰 크루즈)
재앙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자신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석유 재벌이다. 톰 크루즈는 특수분장으로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가네시(리즈 아메드)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려는 인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권력자들과 대비된다.
컴슨 대통령(존 굿맨)
위기가 닥쳤음에도 과학적인 해결책보다 정치적 책임과 자신의 이미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관전포인트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톰 크루즈의 변화다. 《미션 임파서블》처럼 몸을 던져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이번에는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고도 자신이 영웅이라고 믿는 인물을 연기한다. 최근 평단에서도 액션스타 이미지에서 벗어난 그의 연기를 영화의 주요 특징으로 꼽고 있다.
두 번째는 영화가 재난보다 재난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에 관심을 둔다는 점이다. 디거와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 자체보다 대중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다. 그래서 《돈 룩 업》이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떠올리게 하는 정치·환경 풍자가 이어진다.
결말 해석
※ 여기부터는 영화의 구조와 관련된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중반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가 보고 있던 디거의 이야기는 단순한 현실이 아니다.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인물 역시 극중에서 디거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이며, 앞서 보았던 이야기는 실제로 벌어진 비극을 무대 위에서 재구성한 작품의 일부였다는 메타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따라서 영화는 이후부터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실제 재앙이 벌어진 뒤 우리는 그것을 뉴스로 보고, 영화나 연극으로 다시 만들고, 때로는 웃으며 소비한다. 그렇다면 비극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현실을 바꾸는 데 정말 도움이 되는가라는 것이다.
이냐리투는 여기서 쉬운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LA타임스는 영화의 이러한 구조를 두고 카타르시스가 위안은 될 수 있어도 해결책은 아니라는 문제의식과 연결해 설명한다.
제목 ‘Digger’의 의미
Digger는 주인공의 이름이면서 영어로 ‘파는 사람’이라는 뜻도 가진다.
디거는 평생 땅을 파 석유를 얻으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하지만 결국 더 깊이 파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제목은 한 사람의 이름인 동시에 끝없이 자원을 파헤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총평
《디거》는 일반적인 톰 크루즈 영화를 기대한다면 상당히 낯선 작품이다. 화려한 액션으로 재난을 막는 이야기가 아니라 재난을 일으킨 사람이 자신을 구원자로 포장하고, 정치권이 진실보다 이야기를 관리하려는 모습을 블랙코미디로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환경문제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반의 반전 이후에는 영화와 연극 같은 이야기가 현실의 비극을 어떻게 재현하고 소비하는가까지 질문을 확장한다.
그래서 해외 평단의 반응도 상당히 엇갈린다. 과감하고 독특한 풍자를 높게 평가하는 쪽이 있는 반면, 지나치게 과장되고 메시지가 노골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톰 크루즈다. 수십 년 동안 스크린에서 세상을 구했던 배우가 이번에는 세상을 망가뜨리고도 자신이 구원자라고 믿는 남자를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영화의 풍자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결국 《디거》는 지구가 왜 위험해졌는지를 설명하는 영화라기보다 문제를 만든 사람들이 어떻게 책임을 피하고,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에 가깝다. 그래서 웃기면서도 보고 난 뒤에는 꽤 씁쓸한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