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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과 노상현 주연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봤다.
제목만 처음 봤을 때는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녀의 로맨스 영화인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다른 작품이었다.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우정과 연대, 그리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

특히 재희와 흥수라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기본정보
제목: 대도시의 사랑법
개봉: 2024년 10월 1일
감독: 이언희
출연: 김고은, 노상현 외
장르: 드라마, 로맨스
러닝타임: 118분
원작: 박상영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재희」

영화는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 전체를 그대로 옮긴 작품은 아니다. 그중 「재희」를 중심으로 영화화했으며, 

영화에서는 재희와 흥수 두 사람의 관계와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줄거리

구재희(김고은)는 남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연애에도 적극적이고 하고 싶은 말도 거침없이 하는 성격 때문에 주변에서는 그녀를 쉽게 판단하기도 한다.
반면 장흥수(노상현)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은 대학에서 만나게 되고, 우연한 계기로 서로가 감추고 있던 비밀을 알게 된다.
흥수는 재희가 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던 모습을 알게 되고, 재희 역시 흥수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모습을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까워지고, 결국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집에서 생활하면서 각자의 연애와 이별을 지켜보고, 취업과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20대와 30대를 함께 지나간다.

둘은 연인이 아니다. 각자 사랑하는 사람도 따로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오히려 연인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등장인물

구재희 – 김고은
재희는 자유분방하고 솔직하다.
겉으로 보면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 당당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심이고 그만큼 쉽게 상처받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김고은이 이 역할과 정말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밝고 거침없는 모습부터 사랑 때문에 상처받는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재희라는 인물을 단순히 '자유로운 여자'로만 보이지 않게 만든다.

장흥수 – 노상현
흥수는 재희와 정반대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숨기고 살아가며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때로는 냉소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모습이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재희를 만나면서 흥수는 조금씩 달라진다.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관전포인트 –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일까?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재희와 흥수의 관계였다.
둘은 남녀지만 연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친구라고 하기에도 둘 사이에는 꽤 깊은 감정적인 유대가 있다.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과의 연애가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것이 반드시 연애여야 할까?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힘들 때 곁을 지켜주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까지 이해해 주는 관계라면 그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가 아닐까.
제목이 《대도시의 사랑법》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재희의 사랑법이 있고, 흥수의 사랑법이 있으며,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는 방식 역시 또 하나의 사랑법이다.

결말 및 해석

※ 여기부터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두 사람은 계속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삶과 사랑을 경험하면서 재희와 흥수 역시 변화한다.

결국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계속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을 단순히 두 사람의 우정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초점을 맞춰 보기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보면 더 좋았다.
재희는 흥수가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고, 흥수 역시 재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었다.
서로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기준에 맞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인정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 사람의 삶을 응원해 주는 것.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었지만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내며 결국 서로를 성장시킨다.

 

총평

《대도시의 사랑법》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뜻한 영화였다.
처음에는 김고은 특유의 밝고 거침없는 연기와 재희와 흥수의 대화 때문에 유쾌한 청춘영화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사랑과 이별, 외로움, 사회의 시선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깊어진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성소수자라는 소재를 흥수라는 인물의 전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흥수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고 상처받고 외로워하며 성장하는 한 사람이고, 재희 역시 겉으로는 자유분방하지만 자신만의 외로움과 상처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두 사람 중 누가 더 특별하다는 생각보다 결국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다르다는 생각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이것인 것 같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알고도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사랑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대도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중에는 연인이 되는 사람도 있고, 친구로 남는 사람도 있으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관계의 이름이 무엇이든 내 삶의 한 시기를 함께하고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면 그것 역시 충분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대도시의 사랑법》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서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내 곁에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